좁은 천막 안에서 톨비쉬는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밤이 깊었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잠의 조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갈 곳 없는 생각들이 천막 안을 유영했다. 톨비쉬는 딱히 그것을 잡으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에게 밤은 길고 지루했다. 긴 세월 속에서 그는, 현재를 살아가는 것 외의 일은 전부 해봤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였다. 평범함과는 아득히 멀어진 몸이 잠을 거부하는지 그에게 넘치는 것은 시간뿐이었다. 그와 반비례하여 그에게 남아있는 감정들은 빠르게 닳아갔다. 그것을 아깝다고 생각하는 마음마저도, 지금은 얼마 남아있지 않다.
다만 밤에는, 그 어둠과 적막 속에서는 자기 자신을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 좀체 잠이 들지 못하는 것을 숨기기 위해 보초를 자처하여 깨어있는 이 시간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교도들의 추적도 벌써 며칠째였다. 유독 끈질기게 도망 다니는 이들을 잡기 위해 최대한 시간을 아껴가며 다니고는 있었지만 아예 휴식을 취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문득 천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톨비쉬가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 흩어진 긴 머리카락에 어쩐지 시선을 빼앗겼다.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이 이렇듯 잠들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달가워할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 조는 항상 함께 다녀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선지자들에 의해 혼자 있던 조원 한 명이 희생된 사건 이후로 이 원칙은 더욱 강화되었다. 바깥을 경계하는 일마저도 안쪽에서 다른 조원과 함께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을 켤 수도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것을 이유로 합리화를 해가며, 톨비쉬는 어둠 속에 묻힌 머리카락의 옅은 적색을 보려 애썼다. 잠들어 있는 그녀와는 묘한 채무 관계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매우 부당한 것이지만, 마음의 빚이라는 것은 종종 그런 식으로 생겨난다. 그녀에게 자꾸만 눈이 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리라.
교대할 시간은 벌써 지나있었다. 그러나 눕는다고 해서 바로 잠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만큼은 조원들을 쉬게 해주고 싶었다. 이것도 며칠 째다 보니 아무리 그라도 역시 슬슬 지치기도 하고, 쉬게 해주고 싶은 조원들의 마음이 상당히 불편한듯하여 조만간 다음 사람을 깨울 예정이기는 했지만, 아직은 괜찮을 듯했다.
바스락. 다시 한번 천이 맞닿아 내는 소리가 들렸다. 바라보고 있던 긴 머리카락이 살짝 움직였다. 그것에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워낙에 움직임이 없어 숨을 쉬는 게 맞는지 확인까지 해보았던 첫날의 야영이 떠올랐다.
“……아벨린?”
조용히,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이 없자 그는 조금 몸을 움직여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그녀의 잔뜩 찌푸린 얼굴을 알아보았다. 숨이 조금 가빠져 있었다.
“아벨린.”
악몽이라도 꾸는 것일까. 톨비쉬는 한 번 더 이름을 부르며 아벨린의 어깨를 붙들고 조금 흔들었다. 힘없이 흔들리던 그녀가 살짝 눈을 떴다. 괜찮느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아벨린의 입에서 무언가가 새어 나왔다.
“메이론…….”
그것은 그와 그녀 사이에 존재하는 빚의 이름이었다. 톨비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굳었다. 살아온 세월이 무색할 만큼 그는 당황하고 있었다. 아벨린의 눈이 서서히 뜨이고,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톨비쉬는 그녀에게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 조장님.”
아벨린이 톨비쉬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아직 잠이 가시지 않아 목소리가 조금 잠겨있었다. 아까 꿈처럼 내뱉은 옅은 소리와는 다른, 단단한 목소리였다. 자신이 내뱉은 이름을 자각하지 못한 듯 자신을 올려다보는 눈빛에, 톨비쉬는 문득 아벨린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엘베드 조의 결원을 죽은 조원의 누이가 채운다는 소식을 듣고 이런 처사가 어디 있냐며 화를 내는 톨비쉬에게 윗선은 말했다. 그녀가 그것을 원했다고. 당연히 그는 그 이유만으로는 납득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벨린은 생각보다 훨씬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동생의 복수를 위해 이곳에 들어와, 동생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그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벨린에게 말 몇 마디로 포기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그 역시 그녀를 조원으로 받아들이는데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성격에 이곳에 들어올 수 있을 만큼의 신성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득인지 실인지 톨비쉬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소중한 자를 잃은 그 순간부터 그녀에게는 득도 실도 없었다. 아벨린은 그저 하지 않고는 못 견딜 일들을 해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 그녀와 대면했을 때, 자신을 바라보며 가만히 아랫입술을 깨무는 아벨린의 모습을 톨비쉬는 놓치지 않았다. 갈 곳 없는 원망을 쏟아내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 역시 알고 있는 자의 얼굴이었다. 조금만 더 영악했다면 편했을 텐데. 그는 그녀를 볼 때마다 생각했다. 다행히 그녀는 그것들을 모두 짊어지고서도 꿋꿋이 앞으로 나아갈 만큼은 강했다.
“조장님?”
아까보다는 명료해진 목소리가 톨비쉬를 상념에서 끌어냈다. 방금 꾸었던 꿈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을까. 자신이 참지 못하고 그것을 묻기 전에, 그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말했다.
“교대할 시간이야.”
그 말을 내뱉을 때 그는, 정말로 그녀에게 눈이 가는 것이 단순히 빚 때문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